< 터키 여행 4 > - 토프카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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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출입문, 행복의 문>​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술탄 메흐메드는 근위병인 예니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아름다운 도시를 둘러보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면서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를 옮긴 것이 20여 년 전의 일이다.

 

술탄을 걸음을 옮겨 언덕 위의 대포를 쓰다듬는다.

포신에는 아직 그날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 이곳이다!’

도시 공략 직후 만든 궁전이 저 아래 보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천 년 만 년 길이 빛날 대제국의 궁전,

그 새로운 궁전을 지을 터는 바로 여기다.

토프카프 궁전은 그렇게 이곳에 건축되었다.

 


<토프카프 궁전 모형도>


1475년 건축을 시작하여 1478년 완공했지만

그간 많은 술탄에 의해 증개축을 거듭했다.

'토프''대포', '카프'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1856년 오스만 제국을 멸망을 초래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이 새로 지워질 때까지

이 토프카프 궁전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토스카프 궁전의 전체 면적은 약 70만㎡,

상당히 넓은 곳이고

건물도 많지만 궁전의 구조를 알고 가면 이해하기가 쉽다.

아래 그림은 궁전의 전체적인 구조다.

출입문을 들어서서 제 1중정,

황제의 문을 나서면 제 2중정과 이어진다.

제 2중정 왼쪽으로 황제의 여인들이 거처하던 하렘.

다음이 제 3중정, 그리고 마지막 제 4중정의 구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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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프카프 궁전의 배치도>

 

입구의 느낌은 숨이 꽉 막힌다는 것이었다.

둔탁하고 거친,

거대한 성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며칠 전 이스탄불에 내린 60cm의 눈폭탄으로 모든 곳이 얼음과 눈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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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입구>

입구에서 시작되는 제 1 중정.

주로 술탄 근위대인 예니체리가 근무하던 곳이다. 

그리스도 교인이었으면서도 이슬람 황제의 군인이기를 갈망했던 그들,

출세를 위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곳에서 치열한 삶을 보냈을 것이다.

 

예니체리의 급여는 주로 3개월에 한 번씩 지급되는데

술탄은 급여일을 외국 사신을 맞는 날짜를 택했다고 한다.

이유는 외국 사신들에게 자신의 무력을 시위하기 위해서였다.


예니체리 

   ​예니는 새로운, 체리는 병사()의 뜻으로 ‘신군()’을 의미한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정복된 유럽 속령() 내의 그리스도교도 중에서 장정을 징용하여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고 엄격한 훈련을 실시한 다음 술탄의 상비친위군에 편입시켰다. 결혼하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것은 금지시켰으나 고봉()을 받고 고위 ·고관에 영전하는 등용문이었으므로 자기 자식을 지원시키는 그리스도교도 있었다. 특히 14∼16세기의 정복전쟁에서 많은 무공을 세워 투르크병의 인기를 독차지하였으나, 뒤에는 군기가 문란해져 횡포가 심하고 술탄의 폐립()에도 개입하게 되었으므로 1826년 폐지되었다. <네이버 백과>

 

제 1 중정은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었던 곳이다.

건축물의 지붕 형태는 유목민의 지붕 형태인

게르 양식으로 주로 되어 있는데

 

바다를 건너 유럽 땅,

그들은 천년 비잔틴 문화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의 조상과 뿌리를 지키려는 의지로 모인다.

 

<유목민 가옥인 게르 형태의 지붕이다.> 

 

제 2 중정으로 들어서는 황제의 문이다. 

일명 대포의 문이라고도 불리는데 실질적인 궁전 입구가 된다. 

제 2 중정은 '디반의 정원' 이라고 하는데

디반이란 국무회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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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문. 일명 대포의 문>

 

 

제 2 중정부터는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현재도 토프카프 궁전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다.

제 2 중정을 지나면 궁전 내부는 거의 촬영 불가능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다.

궁전의 출입문인 행복의 문,

문에 들어서면 바로 맞이하는 것이

술탄의 사신 접견실.


당시 술탄은 키가 크지 않고 왜소했다.

사신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게 위해 터번을 높이 쓰고

침대같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의 외국 사신 접견실>

 

 


회의 중일 때는 밖의 사람들이 엿듣지 못하도록

수돗물을 틀어놓음으로써 방음 장치를 대신했다.

 


<입구 오른쪽 수도, 회의실 방음용으로 쓰였다.>​


이곳부터 시작되는 제 3 중정은 현재 보석관과 유물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어부가 단 스푼 3개와 꾸구었다는 86캐럿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진귀한 황금빛 보물들.

길게 줄을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관람객들 틈에서

제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수없이 많은 보석, 보물들이 있었다는 것.

유물 전시실에도 관람객의 행렬은 비슷했다.

​모세의 지팡이,

홍해를 갈랐다는 그 지팡이는

영화 "십계"에서 찰톤 헤스톤이 들고 있던 멋진 것은 아니었다.

1m가 조금 넘는 가느다란 그냥 밋밋한 지팡이였다.

다윗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검,

마호멧이 쓴 터반, 그리고 방패 등,

상상을 초월하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모든 것은 엄격한 경비원의 감시 아래

물론 절대 촬영 불가였다.


<제국 의회실 천장 문양>


<제국회의 모습>

 

 

일부다처제의 이슬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렘,

그것도 600여 년 전 그 속에서 살았을 술탄의 여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하렘관,

술탄의 여자가 되기 위한 곳

그 곳 여인들은 성적 기교와 관능미를 연마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황금으로 치장된 최고의 궁궐이었지만

오직 술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금남의 집이었다.

모든 창문은 쇠창살로 막았고,

무시무시한 거세된 흑인 내시가 그들을 시중을 드면서

여인들을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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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의 '하렘의 테라스'(1886)>

 

술탄이 내시를 흑인으로 선택한 것은

혹시 모를 여인들의 배반 때문이었다.

만약 일을 저질러 아기가 태어난다면 아기 피부색은. 

하렘의 여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교행사와 목욕탕 가는 일 외 모든 것이 금지되었던 여인들,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술탄의 눈에 드는 일이었다.

 

여자들은 배꼽을 내놓고 중요 부위만 가린 옷을 입고

술탄을 위해 온몸으로,

자신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춤을 췄다.

"밸리 댄스"의 슬픈 기원 이야기다.

 

모차르트는 26세 때 하렘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후궁탈출>(1782)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예술인들이 하렘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그림 '하렘의 누드', 사세리오.>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술탄이 더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렘 위에 솟은 정의의 탑.

높은 위치에서 궁전을 감시하기 위해 지었다는 것인데

무엇에 대한 정의를 지키려는 것이었든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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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과 정의의 탑>

 


터키 여행 첫날,

작품 소재를 찾고 있던 내게

약하게나마 서광이 비치는 느낌,

뭔가 하나를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터키 여행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