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읍 남하리 김환극부부효비각(曾坪邑 南下里 金煥極夫婦孝碑閣)



김환극부부효비각(金煥極夫婦孝碑閣)는   남하1리 ‘솔모루’에 있는 효비각이다. 효비각은 1972년에 안동인 김환극과 그의 처 광산김씨(光山金氏)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김환극은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14대손으로 증평읍 남하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의 마을을 항상 기쁘게 해 드렸다.



겨울에는 저녁에 이부자리를 펴놓고 들어가 따뜻하게 하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부모님의 의복을 입어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는 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눕게 되자 변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아 병환 증세를 파악하여 백방으로 다니며 약을 구했다. 추운 겨울날에 물고기 먹고 싶다고 하므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 하루도 빠짐없이 얼음물로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를 드린 결과 얼음 속에서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는 등 효성을 다했다. 그러나 급기야 상을 당하니 애통해 하였다. 3년간 시묘하였는데 죽은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증직 받았다. 효비각의 구조는 정면 1칸ㆍ측면 1칸 맞배지붕구조의 목조기와집이며, 효비각 안에 있는 효비의 비문은 1958년에 성균관장 최찬익(崔燦翊)이 짓고 글씨는 괴산군수 이길원(李吉遠)이 썼다. 비지정문화재이다



김의로(金義路:1764∼1848)는 자는 정보, 본관은 안동으로 고려 안렴사 오은 김사렴의 후손으로, 효자 김환극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를 섬김에 있어 친모나 조금도 다름없이 효성으로 받드니 계모 또한 자기가 낳은 자식과 다름없이 사랑했다.
부모상을 당하여 애통함이 극진했으며 예를 벗어남이 없었고 자녀들을 거느림에 있어서도 항상 자기 스스로가 먼저 모범을 보여 성실하고 법도 있는 가풍을 이룩했다.
향토 사림이 여러번 그의 특행을 증천했고, 고종 29년(1887)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증직됐다.
그의 사당과 묘소는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솔모루(황새말산)에 있고, 묘 옆에는 신도비가 있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매일매일 최면을 걸며 사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