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생명과학단지가 위치하고 있는 연제리에는  중앙에 모과공원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공원이 있다

공원의 명칭의 유래는 이곳이 과학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모과울이라하여 모과나무가 많았던 동네이름에서 시작된다.

동네 이름에 걸맞게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어 이 공원의 이름을 모과공원이라 하였다.

 

 

2000년 6월 1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2.5m, 줄기 지름 1m, 줄기 둘레 3.7m이며 수관()이 사방으로 벋어 동쪽 5.9m, 서쪽 7m, 남쪽 6m, 북쪽 6.1m나 된다. 나무껍질은 홍갈색과 녹색이 섞여 얼룩얼룩한 비늘모양이다.

추정 수령은 이견이 있으나 약 500년 이며, 원줄기에 구멍이 크게 생겼다.

연제리는 예로부터 모과나무가 많아 모과울이라는 지명으로 알려졌다.

 

 

연제리 모과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모과나무 중 하나다. 모과나무 중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첫 번째 나무이기도 하다. 그만큼 의미 있는 나무다.

치유의 흔적으로 남은 울퉁불퉁한 옹이는 뿌리 부근에서부터 침묵 속의 용트림으로 피어올랐다. 단단하면서도 매끈매끈한 줄기 표면에는 모과나무 특유의 얼룩 무늬도 선연하다. 나무의 연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모과나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는 조선 세조 초에 유윤이라는 선비가 있다.

젊은 시절부터 벼슬살이를 한 유윤은 단종이 폐위되자 모든 벼슬을 버리고 바로 이곳 모과울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

 

 

세조는 학식과 덕이 깊은 그를 조정으로 다시 불러내려 했다. 그러나 유윤은 자신을 찾아온 조정 관리에게 뒷동산의 모과나무 그림을 그려 주며 돌려보냈다. 그림 편지에는 자신이 ‘이 모과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글을 덧붙였다.

모과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라고 표현한 건 모과 열매의 쓰임새가 적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 제법 탐스럽게 익는 열매는 보기도 좋고 향기도 좋지만 먹을 수는 없다. 나무 열매의 별다른 쓰임새를 찾아내지 못했기에 옛 사람들은 모과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로 여겼다.

유윤의 서한을 받은 세조는 모과나무를 뜻하는 ‘무’(楙)와 마을 동(洞)을 써서 유윤에게 ‘모과나무 마을에 사는 처사’라는 뜻의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이름을 지어 보냈다고 한다. 이때가 1450년이었다. 그때에도 이 모과나무는 제법 큰 나무였다고 하니 지금 연제리 모과나무의 나이는 500살을 넘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않아 조금은 황량한 듯한 생명과학단지의 한켠에 서서

변해가는 주위의 모습을 바라보며 봄이면 파란싹 밀어 올려 이름값을 하며 꿋꿋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제리 모과나무.

모과공원이라는 커다란 이름표 하나 앞세우고 겨울바람 부는 오송과학단지 벌판을 지키고 있다.

 

 

본관은 서산()이고, 호는 무동처사()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대제학 저정()을 역임한 유백유()이다. 일찍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단종이 폐위되자 세상일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여 학업과 후학양성에만 힘썼다. 학문이 뛰어나고 정세에 밝아 세조()가 여러 번 벼슬을 마련하여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광해군() 즉위 후 임금이 직접 ‘무동처사()’라 쓴 어필을 하사하여 불렀으나 끝까지 벼슬에 나가지 않고 1476년(성종 7)에 자손들에게 벼슬에 나아가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고 죽었다. 충청남도 서산의 송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유윤[柳潤] (두산백과)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매일매일 최면을 걸며 사는 소시민......